측우기 장영실 과학관 관람 포인트 6가지



측우기 장영실 과학관 관람 포인트 6가지에 대해 탐구해보겠습니다. 이 포스트를 모두 읽어주시면 장영실 발명품 및 장영실 해시계 업적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장영실 과학관 관람 포인트 6가지의 정보가 필요하면 모두 읽어주세요. 이제 아래에서 전부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선 세종시대 최고의 과학자로 기억되는 측우기 장영실은 역대 과학자 가운데 장영실만큼 이름이 회자되는 인물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영실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를 한국 최초로 만든 인물이며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번 등장할 정도로 유명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삶은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기도 하며 어떻게 출생하여 성장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까닭은 그의 출생 배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 장영실



조선전기 자격루, 옥루 등을 제작한 과학자. 기술자로 중국계 귀화인과 기녀 사이에서 태어났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아산의 명신으로만 기재되어 있습니다.

동래현의 관노로 있을 때 그의 재주가 세종에게 인정되어 중국에 파견, 천문기기 연구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귀국하자 면천되고 1423년(세종 5) 상의원별좌에 임명되어 궁중기술자로서의 활동이 시작되었고 등용된 그 다음해인 1424년에 물시계를 완성하였습니다. 

세종실록에는 중국의 것을 참고하여 청동으로 경점의 기를 부어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공로로 정5품의 행사직으로 승진하였습니다.

2. 장영실 과학관



장영실과학관은 그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결실을 탐구할 수 있는 명소로 2011년 7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구성과 전시 기획이 체계적이고 알찬 편이라 서울의 여느 과학관 못지않으며 측우기 장영실의 발명품과 과학 원리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잘 연결했습니다.

위치는 아산시 북서쪽의 곡교천 변에 있는 아산환경과학공원으로 공원 내에 아산시생활자원처리장, 생태곤충원, 그린타워전망대 등과 이웃해 있습니다. 

규모는 총 3층으로 1층 어린이과학관과 과학공작, 2층 ‘장영실관, 3층 사무실과 수장고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물 한가운데는 중정이 있습니다. 

3. 장영실 발명품



천문시계 그가 개발한 천문시계는 천체의 움직임과 계절 변화를 정확하게 측정하여 농사와 일상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장영실은 천체망원경을 이동식으로 개발하여 별들과 행성들을 더욱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천체 관측의 정확성과 범위가 대폭 확장되었습니다.

또한 수자원지도기는 물 흐름을 측정하는 수자원지도기는 농업과 수자원 관리에 있어 혁신적인 발명품으로서 장영실의 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최초의 발전기는 자기력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를 개발했습니다. 이는 현대 전기공학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4. 장영실고



세종장영실고는 내 삶을 위한 직업교육의 교육 비전을 설정하여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또한 특별한 꿈을 꿀 수 있도록 학습 기회를 확대한 직업계고 학점제 선도학교로서 모범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직업계고 학점제 선도학교로서 학교 자체 규정을 정비하고 수업과 연계한 과정 중심 평가를 핵심으로 직업계고 학점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종장영실고는 학과 내 다양한 전공 심화학습을 지원하는 학과 간 타 학과 융합형을 동시 운영하여 직업계고 학점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습니다.

5. 장영실 업적



측우기 장영실의 과학적 재능으로 태종 때 이미 발탁되어 궁중기술자 업무에 종사하였다. 제련 · 축성 · 농기구·무기 등의 수리에 뛰어났습니다.

1421년(세종 3) 세종의 명으로 윤사웅, 최천구와 함께 중국으로 유학하여 각종 천문기구를 익히고 돌아왔습니다. 

1423년(세종 5) 왕의 특명으로 면천되어 정 5품 상의원별좌가 되면서 관노의 신분을 벗었고 궁정기술자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 후 행사직이 되고 1432년 중추원사 이천을 도와 간의대 제작에 착수하고 각종 천문의 제작을 감독하였습니다. 

5.1 장영실 해시계



앙부일구는 1434년 조선 세종대왕 16년 이후로 제작·사용된 해시계로 과학역사, 예술적 가치를 인정 받았습니다.

1985년 8월 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45호로 지정되었고 앙부일구는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초기의 제작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때 제작된 앙부일구는 남아 있지 않아 18세기에 제작된 것을 보물로 지정하였고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은 크기로 강건이 제작한 것입니다. 

이외에는 자격루,혼천의,해시계,물시계,천상열차분야자도와 같은 장영실의 발명품이 있습니다.

5.2 장영실 죽음



측우기 장영실의 말년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장영실은 1442년 임금의 가마를 만들었습니다.

제작을 감독하는 일을 맡았을 때 가마가 부서지는 사고로 곤장 80대를 맞고 파면되면 궁궐 밖으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이후 그의 행적을 알 수 없답니다. 장영실은 신분의 한계를 극복한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가 세종대왕으로 명으로 제작한 기구들은 백성들의 삶을 더 편리하게 했고, 나라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오늘날에 신기술 제품을 개발하고 산업 기술 혁신을 이룬 단체나 사람에게 ‘장영실상’을 수여하며 그의 과학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5.3 세종대왕 장영실



측우기 장영실은 본래 동래현의 관노이나 발명가로서의 훌륭한 재주를 태종이 인정하여 발탁하였습니다.

세종은 실용주의자로서 장영실의 적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부왕의 뒤를 이어 중용하였습니다. 

세종은 장영실을 1421년(세종 4년) 윤사웅, 최천구 등과 함께 중국에 보내어 천문기기의 모양을 배워오도록 했습니다. 

귀국 후 장영실 나이 약 34세 때인 1423년(세종 5년)에 천문기기를 제작한 공을 인정받아 면천되었고 다시 대신들의 의논을 거쳐 종5품 상의원 별좌에 임명되었습니다.

1424년(세종6) 5월, 임금은 그를 정5품 행사직으로 승진시켰고 갱점지기를 만들라고 명하였고 그래서 나온 것이 첫 물시계였습니다.

5.4 장영실 측우기



측우기(測雨器)는 조선 시대에 강우량 분포를 측정하던 기구로서, 세계 최초의 강우량을 재는 기계입니다.

조선 세종 때 처음 만들어 전국에 보급·시행하였으며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활용되었고 현존하는 유일한 측우기는 1837년 만들어 졌습니다.

공주 충청감영에 설치되었던 금영측우기(보물 561호, 국보 승격예정)이며 정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의 관측 기록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측우기는 유럽보다 약 200년 앞서서 만들어졌으며, 당대 조선의 과학기술력을 짐작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함께 보면 유용한 포스트

삼봉 정도전 요동정벌 관람 포인트 5가지
오죽헌 강릉 오죽헌 관람 포인트 5가지
한국사 신사임당 초충도 특징 5가지

지금까지 측우기 장영실 과학관 관람 포인트 6가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모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가적으로 궁금하신 게 있다면 아래의 글 장영실 측우기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됩니다.